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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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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산투어 댓글 0건 조회 4,456회 작성일 19-01-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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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기마유목민)의 탄생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한인일보발행인)

 

지난 3편까지가 이번 연재의 서두 부분에 해당된다면, 제4편 부터는 본론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유라시아 대륙을 동에서 서쪽으로 여행을 해 본 분들이면 직접 눈으로 보셨겠지만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동족으로 대싱안링 산맥에서 서쪽으로 헝가리 평원에 이르는 대략 8000km에 달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공간은 크게 동부(몽골 고원과 알타이, 남시베리아), 중부(텐산 산맥과 카자흐스탄), 서부(카스피해와 흑해 북쪽 연안, 도나우강 중, 하류 유역)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서부와 중부의 초원지대에는 현재 유목민이 거의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 이 땅의 주인공은 분명히 기마유목민이었다. 물론 유목민의 거주지로 일컬어지는 지역이라고 반드시 유목민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도 실제로는 많은 정주민이 섞여 있었다. 이런 점에서 초원 세계의 역사는 유목민이 주축을 이루면서 정주민이 여기에 관여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과 우랄 지방에서는 기원전 16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가벼운 수레가 발견되었다. 수레바퀴의 지금은 약 1미터, 양 바퀴의 폭은 1.2~1.3미터 바퀴살 수는 10개 전후이다. 재갈멈치는 원반형으로 안쪽에 돌기가 붙어 있고, 어떤 것은 미케네 양식의 소용돌이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재갈멈치는 동유럽에서부터 그리스와 서아시아에 이르는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북방 초원지대보다 그리스와 서아시아가 문화적으로 앞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말이 끄는 수레와 소용돌이 문양이 붙은 재갈멈치는 초원지대에서 남방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초원지대 거주민들의 양극화 : 농경-유목민

기원전 10~9세기가 되면 초원 지대의 농경-목축민은 양극화된다. 즉 물을 확보할 수 있는 남쪽 오아시스에서는 순수한 정주 농경민이 나타나고 북방 초원에서는 이동 목축을 영위하는 전업 유목민이 등장한다.

유목민의 발생배경은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기마가 일반화되었다는 검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3개의 구멍이 뚫린 막대모양의 재갈멈치가 보급되어 말타기가 훨씬 편리해진 결과이다. 또 하나는 나무뼈대를 갖춘 간단한 주거가 출현한 점이다. 이 주거는 카자흐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르타’의 원형일 가능성이 있다.

초원지대 서부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기마 유목민인 스키타이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바로 전에 이미 기마유목문화가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이 시기를 흔히 선 스키타이시대라 부른다.

선 스키타이 시대 초원지대 동부와 서부간의 교류가 점점 활성화되고 거의 같은 형식의 실용품(마구와 무기)이 전 지역에 보급되고 사슴돌을 세우고 솥을 사용하는 의례도 널리 퍼졌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물질 문화뿐 아니라 정신문화도 유라시아 초원 지대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통합성은 스키타이 시대가 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키타이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의 기원에 대해 세가지 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가지 설은 여러 신이 등장하는 신화 전설이고 서로 공통점도 많다. 특히 외래의 남신과 토착의 여신을 조상으로 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외부에서 이주해 온 스키타이가 토착민을 지배하게 된 상황을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설에 의하면 다른 유목민이 마사게트의 공격을 받은 스키타이가 동방에서 볼가 강을 건너 흑해 북부 연안으로 이주하여 원래 거기에 살고 있던 유목민 킴메르를 몰아내고 그 지역을 차지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도 이 세번째 설에 가장 신빙성을 두고 있다. 그 후 사르마트, 훈, 아바르, 몽골을 비롯한 수많은 유목민이 동방에서 이동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은 대부분 유라시아 초원 지대 동부에서 기원하고 그곳에서 급속히 서쪽으로 확산되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스키타이 동물 문양은 동물끼리 싸우거나 맹수가 초식동물을 습격하는 이른바 동물투쟁문양이 유명하다.

초원지대에서는 어느 시대나 원형 무덤이 조영되었다. 스키타이 시대에는 특히 대형 원형 무덤이 만들어 졌다. 카자흐스탄에도 이 시대의 원형 무덤들이 다수 발굴되었다. 스키타이는 어디까지나 북카프카스에서 흑해 북쪽 연안에 걸쳐서 거주하고 있던 집단의 명칭이며 언어적으로 이란계통이었다. 이보다 동쪽의 카자흐스탄에서 알타이 주변까지는 이란계 집단이 퍼져 있었고 그 동쪽인 몽골고원에서 중국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는 투르크계 또는 몽골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와 같이 초원지대 거주민들은 언어와 계통은 달라도 초원이라는 비숫한 환경에서 유사한 기마 유목 문화를 갖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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